때가 왔다. 내가 회사를 나가야 할 때 말이다. 엊그제 언니랑 톡을 하면서 내 결정을 이야기 했었다. “나 계속 몸 안 좋잖아. 이번 여름휴가만 얼른 쓰고 회사 그만 두려고.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렇게 해” 언니는 그렇게 더 묻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또 몸이 안 좋아 힘들어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전부터 언니가 먼저 그 정도로 몸이 힘들면 그만 둬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해보겠다고 했다. 매번 그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했었기 때문에 염치가 조금 없기도 했고, 이번에는 나도 해볼 때까지는 해볼 생각이었다. 회사가 나를 자를 때까지 기다려 보고 싶었다. 그래야 미련이 조금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틀동안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속이 또 탈이났다. 신경성 위장병인 것 같은데 누구한테 말하기도 뭐하다. 일이라도 많아서 라든가 주변 사람들이 힘들게 해서 혹은 어떤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하러 왔는데 일이 없어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주변 눈치를 보느라 일하는 척을 해야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차라리 정말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내가 잘 처리하고 뿌듯해할 만한 일이 많다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 같다. 이번에는 소화기 내과를 찾아갔다. 다행히 이곳 의사도 친절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아주 잘 들어주고 친절히 이야기 해주었다. 다..
워크샵을 다녀온 후로 계속 몸이 좋지 않았다. 그 전부터 조금 안좋았는데 하루 자고 온 게 꽤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럴만도 하다. 그날 잠을 제대로 못자기도 했고 안그런 척 했지만 1박 2일동안 신경이 곤두서서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에는 밥먹으러 오라는 언니한테 거절을 하고 쉬었었다. 어제는 조금 몸이 나아진 듯 하여 아침부터 언니네로 갔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또 몸이 까라지고 견딜 수 없이 힘들어졌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해서 오는 길은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언니네서 체온계로 쟀을 때 미열이 좀 있었는데 계속 그 상태였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여전히 기운은 바닥이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 출근 했다가는 일주일이 힘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팀장님..
내게는 이 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화면가득 영문으로 된 문자들을 투닥투닥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써내려 가면내가 생각하는 기능이 구현되고 나의 창의력을 발휘해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온 종일 컴퓨터 책상에 앉아블랙커피를 마시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매우 근사할것 같았다. 가장 큰 매력은 어딘가의 점 하나만으로도 작동이되지 않던 오류를 찾아내었을때의 희열감.베스트는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했을때 완벽하게 작동되어 한번에 해결이 되었을 때의 만족감과 성취감.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일을 전문가처럼 해낼 때의 뿌듯함. 그런데 나는 아직 그러게 되기 위한 과정이 남아있었다.경험이 필요했고 연습이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내 마음이 이미 너무 멀리 갔..
회사라는 것이 싫은 이유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워크숍을 정말 너무 너무 싫어한다. 안그래도 힘들게 버티고 있는 회사생활에 이런 이벤트는 쥐약이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조심해야 하는 이런 시기에 워크숍이라니! '회사가 미친거 아냐?' 욕을 욕을 하다가 역시 혼잣말임을 깨닫고 그만 두었다. 워크숍이 싫은 이유 중 또 한가지는 회사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없어서이다. 대리 이하 모든 직원이 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30세 이하만 가는 워크숍이라는 것이다. 나는 서른 여섯씩이나 먹고 아무도 모르는 주임을 달고 있어서 거기에 가야만 했다. 몇차례 안가면 안되겠느냐고 우는 소리를 해 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워크숍 당일. 두어시간이 걸려 도착했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었고 누구..
체력이 약한 탓인지 초저녁부터 몰려오는 졸음에 버티기를 하다가 재밌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결국 티비를 끄고 금세 잠들던 요즘이었다. 2년만에 백수 탈출하고 엉겹결에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느라, 적지 않은 이 나이에 신입처럼 일을 배우느라, 이쪽 저쪽 눈치를 보느라 하루가 고단했던 매일밤이었다. 체질에 안맞는 회사생활을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했는데 3개월이 되어간다. 고작 3개월. 체감상으론 적어도 1년은 된 듯 싶은데 일이 익숙해졌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하루가 길단 말이다. 여하튼 그랬는데 오늘은 낮에 오랜만에 마신 바닐라라떼 때문인지 퇴근후 조금전까지 읽던 책때문인지 한참 졸릴 시간이 지났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럴땐 생각이란걸 한다. 요즘 난 잘살고 있는건가? 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잘 버티..
본사로 출근하는 마지막날. 딱히 교육이라고 할 것도 없는게 나 혼자 시스템 코드 눈 빠지게 보다가 끝난 느낌이다. 중간 중간 몇 가지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아주 조금이었다. 처음 3주 가량 멀리 출 퇴근할 생각에 까마득했는데 마지막 날이라니. 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려 어쩌면 밀릴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다.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평소처럼 달리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안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 안개가 살짝 덮힌 산이 보였고, 길게 뻗은 나무들도 보였다. 창 밖의 풍경은 너무 평온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었다. 앞에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달려가던 어떤 차가 이미 한참전에 내 앞을 쌩하고 달려갔는..
나이 먹은 사람이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막상 해보니 사실은 아주 비참할 정도로 처절하다. 평소 잘 실감하지 않던 나이를 적나라하게 체감시켜 준다.한참 어린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며 배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체력도 안따라준다. 열정적으로 하고 싶어도 너무 금방 피곤하다.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또 한가지는 이해력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것이다.6살 많은 언니가 어릴적엔 그렇게 커보이고 언니의 말에는 상당한 힘이 있었는데 내가 머리가 크고 보니 가끔 언니가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예를 들어 쇼핑을 같이 갔다가 점원이 무언가 설명을 하면 나는 한번에 알아듣겠는데 언니는 여러차례 설명을 들어야 완전히 이해를 했다. 나는 언..
드디어 2년만의 첫출근! 조금은 긴장된, 약간의 설렘이 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가장 큰 마음은 걱정이었다. '작년에 사고로 운전이 무서운데 출퇴근이 괜찮을까?이 회사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이 일에 고비를 넘기고 내가 할 수 있을까?사람들은 괜찮을까?치아 교정중인데다가 고기 음식도 많이 못먹는데 점심 먹는건 불편하지 않을까?퇴근은 정말 칼퇴를 시켜주나?'별의별 걱정을 하며 시간 맞춰 들어간 사무실에서는 정말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첫출근을 했다는 말에 안내를 해준 문 가까이에 있는 직원과 처음 말을 하곤 내내 말할 일이 없었다.오전에는 회사내 이런저런 등록을 하며 시간이 갔고 오후에는 컴퓨터 작업환경 맞추고 내가 앞으로 맡을 시스템을 조금 살펴보니 시간이 다 갔다. 정신없이 지나간 오늘이 집에..
길고 험했던 어두운 터널이 드디어 끝인건가,내가 백수로 지내면서 슬럼프가 시작 된 것 같겠지만아니다.훨씬 전, 그러니까 백수 2년을 합치면 거의 4년이 넘은 시간이었다.그때부터 시작된거였고쉬면서 해결될줄 알았다.결국 오랜 시간이 걸려 다 앓고서야 끝이 보이는 일이었다.나는 믿고싶다.이제 정말 끝이라는 것을.내가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잃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내가 원하는 보상이 아니라면너무 억울 할것같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한다.직장인으로잘할수있을까나이먹고 또 하나 늘고있는 건두려움이다.어릴때는 실수를해도 서툴러도 이해를 하지만어른이 될수록 아무도 봐주질 않으니 말이다.2년간 쉬어서 감이 떨어지진 않았을까도 싶은데이번엔 정말 잘해보자.왠만하면 즐겁게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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