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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속이 또 탈이났다.

신경성 위장병인 것 같은데 누구한테 말하기도 뭐하다.

일이라도 많아서 라든가 주변 사람들이 힘들게 해서 혹은 어떤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하러 왔는데 일이 없어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주변 눈치를 보느라 일하는 척을 해야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차라리 정말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내가 잘 처리하고 뿌듯해할 만한 일이 많다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 같다.

 

이번에는 소화기 내과를 찾아갔다.

다행히 이곳 의사도 친절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아주 잘 들어주고 친절히 이야기 해주었다.

 

다음날,

병원까지 오는데 너무 정신이 없었다

별로 아침에 한 건 없지만 바빴다.

아니, 바빴다.

화장실을 셀 수 없이 들락거려야 했으니까.

어제 위와 대장검사 예약을 갑자기 하는 바람에 어젯밤부터 약을 먹고 화장실을 갔는데 너무 힘들다. 다른 것보다 대변이 아닌 물이 나오는데 항문 주변 피부가 너무 쓰라리다.

그거 말곤 괜찮은 것 같다.

밥을 제대로 못먹어서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기운 없는 것도 약간 느껴질 뿐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 기다렸다. 링거를 꽂고 대기실에 있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수면으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표정으로 봐서는 상당히 긴장한 눈이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말을 시키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마스크를 벗으면 학생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그만 두었다.

내가 처음 내시경을 받았던 그 날이 생각났다.

중학생때부터 신경성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때였던 것 같은데 나혼자 내과를 찾았다. 그때는 지금도 완전 촌구석인 시내에 있는 작은 병원이었는데 내과가 거기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면으로 하면 너무 비용이 비싸서 그냥 뭣도모르고 했다가 며칠동안 내 목구멍을 통과해서 식도로 내려가던 내시경기구가 느껴졌다. 엄청나게 켁켁거리며 힘들었던 악몽같은 기억이다.

그때도 지금도 보호자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조금 큰 병원에서 했다면 수면 내시경에 보호자를 반드시 동반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작은 병원을 택했다. 퇴근하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유일하기도 했지만 내시경을 받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보호자 동반 문제를 염두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내시경을 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면, 지금은 더 무서운 것이 생겼다.

앞으로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를 불러야 하나 그런 문제말이다. 보호자가 없으니 동의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 위급상황에서도 치료를 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큰 부상을 입었는데 피를 철철 흘려 위험한 상황인데 보호자가 없어서 병원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죽는게 아닌가 그런 상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섭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결혼을 억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도 마찮가지다. 이몸으로는 회사 생활도 못하고 내 사업도 못할 것 같다. 나는 대체 뭘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소명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잘못 태어난 것일까.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다.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복잡해 있었는데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제 내가 내시경 검사해야해서 보호자 전화번호 남길건데 혹시 전화오면 받아달라고 했었다. 언니는 괜찮냐며 전화를 했지만 조금은 잔인한 현실적인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말이다. 몸이 그 정도로 아픈거면 그 회사와 맞지 않는게 아니냐며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어떤 회사를 가든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또 그럴 것 같다. 회사 체질이 정말 아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검사가 끝나있었다.

마취에 아직 다 못깨서 비몽사몽 상태로 앉아있는데 간호사가 진료실로 가라고 했다.

일어나 걸으니 꽤 어지러웠다. 내가 비틀거리자 조금 더 앉아 있다가 가보라며 다시 나를 앉혔다.

그렇게 더 잠시 있다가 의사의 소견을 듣고 약국에서 약까지 받아 집으로 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가 않았다.

위염이 있고 장에서 용종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해둔 상태라고 들었던 것 같다.

 

 

2020.06.20.토.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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