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약한 탓인지 초저녁부터 몰려오는 졸음에 버티기를 하다가 재밌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결국 티비를 끄고 금세 잠들던 요즘이었다. 2년만에 백수 탈출하고 엉겹결에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느라, 적지 않은 이 나이에 신입처럼 일을 배우느라, 이쪽 저쪽 눈치를 보느라 하루가 고단했던 매일밤이었다. 체질에 안맞는 회사생활을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했는데 3개월이 되어간다. 고작 3개월. 체감상으론 적어도 1년은 된 듯 싶은데 일이 익숙해졌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하루가 길단 말이다. 여하튼 그랬는데 오늘은 낮에 오랜만에 마신 바닐라라떼 때문인지 퇴근후 조금전까지 읽던 책때문인지 한참 졸릴 시간이 지났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럴땐 생각이란걸 한다. 요즘 난 잘살고 있는건가? 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잘 버티..
본사로 출근하는 마지막날. 딱히 교육이라고 할 것도 없는게 나 혼자 시스템 코드 눈 빠지게 보다가 끝난 느낌이다. 중간 중간 몇 가지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아주 조금이었다. 처음 3주 가량 멀리 출 퇴근할 생각에 까마득했는데 마지막 날이라니. 어제 오후부터 비가 내려 어쩌면 밀릴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다.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평소처럼 달리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안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 안개가 살짝 덮힌 산이 보였고, 길게 뻗은 나무들도 보였다. 창 밖의 풍경은 너무 평온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었다. 앞에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달려가던 어떤 차가 이미 한참전에 내 앞을 쌩하고 달려갔는..
나이 먹은 사람이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는 것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막상 해보니 사실은 아주 비참할 정도로 처절하다. 평소 잘 실감하지 않던 나이를 적나라하게 체감시켜 준다.한참 어린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며 배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체력도 안따라준다. 열정적으로 하고 싶어도 너무 금방 피곤하다.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또 한가지는 이해력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것이다.6살 많은 언니가 어릴적엔 그렇게 커보이고 언니의 말에는 상당한 힘이 있었는데 내가 머리가 크고 보니 가끔 언니가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예를 들어 쇼핑을 같이 갔다가 점원이 무언가 설명을 하면 나는 한번에 알아듣겠는데 언니는 여러차례 설명을 들어야 완전히 이해를 했다. 나는 언..
드디어 2년만의 첫출근! 조금은 긴장된, 약간의 설렘이 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가장 큰 마음은 걱정이었다. '작년에 사고로 운전이 무서운데 출퇴근이 괜찮을까?이 회사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이 일에 고비를 넘기고 내가 할 수 있을까?사람들은 괜찮을까?치아 교정중인데다가 고기 음식도 많이 못먹는데 점심 먹는건 불편하지 않을까?퇴근은 정말 칼퇴를 시켜주나?'별의별 걱정을 하며 시간 맞춰 들어간 사무실에서는 정말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첫출근을 했다는 말에 안내를 해준 문 가까이에 있는 직원과 처음 말을 하곤 내내 말할 일이 없었다.오전에는 회사내 이런저런 등록을 하며 시간이 갔고 오후에는 컴퓨터 작업환경 맞추고 내가 앞으로 맡을 시스템을 조금 살펴보니 시간이 다 갔다. 정신없이 지나간 오늘이 집에..
길고 험했던 어두운 터널이 드디어 끝인건가,내가 백수로 지내면서 슬럼프가 시작 된 것 같겠지만아니다.훨씬 전, 그러니까 백수 2년을 합치면 거의 4년이 넘은 시간이었다.그때부터 시작된거였고쉬면서 해결될줄 알았다.결국 오랜 시간이 걸려 다 앓고서야 끝이 보이는 일이었다.나는 믿고싶다.이제 정말 끝이라는 것을.내가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잃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내가 원하는 보상이 아니라면너무 억울 할것같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한다.직장인으로잘할수있을까나이먹고 또 하나 늘고있는 건두려움이다.어릴때는 실수를해도 서툴러도 이해를 하지만어른이 될수록 아무도 봐주질 않으니 말이다.2년간 쉬어서 감이 떨어지진 않았을까도 싶은데이번엔 정말 잘해보자.왠만하면 즐겁게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자.
긴장도 되고 머릿속이 복잡한 하루였다. 오후3시 면접이라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멀었다. 처음 가는 길이고 놀러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 어렵게 주차를하고 들어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는 대표와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웃픈건 코로나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면접을 봤다. 떨리지는 않았다. 다만, 서른 중반이 넘어서 보는 면접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나오니 멍해지는 건 여전한 것 같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나도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이 때문인지 내가 원하던 면접이 아니어서인지 솔직히 간절함은 없었다. 이상한 것은 내가 대답을하면서 느꼈는데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어필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나도 모르게 꽤..
코로나 확산을 일으킨 신천지 교주가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TV를 켜놓고 멍하게 보고 있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국가 재난 사태를 만들고서 무슨 할말이 있을까 싶어 봤는데 도무지 노인네가 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는 않고 뒤에서 들리는 시위소리가 오디오를 채울 뿐이었다. '시간아깝게 괜히 봤네'하고 궁시렁대며 컴퓨터로 딴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분명 잘못 걸린 전화거나 광고 전화겠거니 하고 귀찮아 무시하려다가 그냥 받았다. "안녕하세요. 00회사라고 합니다. 사람인에 인재 정보를 보고 연락 드렸어요." 쉬는동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나의 결론은, 어렵게 배운 개발일을 포기할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하면 할 수록 내 길이 아닌 것 같고 더 이상 이 일을 할 자신..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 입사 때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고작 3년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 안다. 회사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성장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성장 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점차 내가 설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회사는 점점 웹 개발 쪽과는 멀어지고 디자인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내 자신이 실망을 했고 이 일이 자신이 없어져갔다. 한참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연습에 또 연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안된다고만 하면서 그렇게 나 스스로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업무보다는 회사의 다양한 잡일을 다 하고 있었다. 입사 후 ..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세상에 못 할일은 없겠다 싶다가도 이 분야를 알면 알수록 나의 부족함이 보이고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출근한 나에게 사장님이 신문을 내밀며 제안을 하셨다. “이거 한번 볼래요? 오늘 신문에 00사이버대학교 모집 공고가 있던데 한번 살펴보고 지원 해보는 게 어때요? 지금 별로 회사가 바쁘지 않으니까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너무 부담 갖진 말고요. 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네, 한번 볼게요.” 여러 번 느꼈지만 사장님은 이전 대표님과 다르게 학력이 중요한 분인 것 같았다. 내 자격지심에 사장님의 제안이 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쁘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면접을 보러 간 날은 꽤 추운 날이었다. 눈이 많이 와서 세상이 하얗게 눈부셨고 골목 길 도로는 아직 눈이 녹지 않은채 얼어있었다. 네비게이션을 켜고 출발했는데 조금 먼 곳에서 목적지에 도착 했다는 안내를 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당황스러웠다. 약속 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어 물어야 했다. 아무래도 길도 잘 못찾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첫 인상이 별로 좋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 추위에 얼어서인지 긴장이 되서인지 얼굴에 열이 올라 붉어졌다는 느낌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는 일반 광고대행 회사였다. 내가 입사했을 때 직원은 나뿐이었고, 당시 대표님과 지금 사장님까지 총 3명이었다. 두 친구 분이 이제 막 시작한 회사였다. 사무실은 1인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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