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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이미 꽉 차있는 차들을 보고 짐작했다.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아무래도 대부분 이 차들의 주인은 바로 옆 등산로를 택한 것 같다. 양궁장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적당했다.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이다.

해는 어느 방향에서든 내 머리위에서 뜨거웠다.

차에서 썬글라스를 챙겨온 내 선택도 좋았다.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눈을 피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태양의 직접적인 빛 때문인지 오늘은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컨디션도 최상이고 무엇보다 청량한 공기와 파란 하늘, 아직 차갑긴 해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바로 이 맛이야.’

이런 날에 걷기는 온전히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속도를 처음부터 높였다.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빠른 비트의 팝송이 나올 때면 내적 댄스를 할 수 밖에 없어 아쉽긴 해도 괜찮다. 난 지금 충분히 신이난다. 박자에 맞춰 더 힘차게 리듬있게 걸으면 된다.

음악에 한껏 취해 걷다가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 갈 때 그 공백 시간에서야 알았다. 내 숨소리가 이리도 거칠었는지 말이다. 그렇게 온전히 집중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축구공이 약간 속도 있게 굴러왔다.

 

아직 죽지 않은 나의 운동 신경으로 공이 더 멀리 가지 않도록 잡았고 곧바로 굴러온 쪽으로 차려고 보니 작은 남자아이가 공을 잡으러 오다가 멈칫하고 서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최대한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공을 살짝 차주고 내 갈 길을 갔다. 아주 빠르고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지나갔다. 그런데 가다가 아차 싶었다. 그 아이는 나의 미소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의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발로 차 본 축구공과 쭈뼛거리며 서 있던 아이가 반가웠었다. 하지만 내가 한바퀴를 돌아 다시 그곳에 갔을 땐 그들은 이미 가고 없었다.

 

 

1시간가량 최고 속도로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땀도 제법 났다.

걸으면서는 노랫소리와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팔자걸음이 되지 않게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폈다. 땅을 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모델이 된 것처럼 걸었다. 최고 속도로 다른 사람들을 추월해 옆으로 지나갈 때는 왠지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 같았고 기분 좋음이 더 상승했다. 그러다 누군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앞서 갈 때 기분은 또 달랐다.

나보다 키가 큰 것 같지도 않고 나이도 더 많아보였는데 내가 온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걷는 걸음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추월해 갔다. 나를 지나쳐 저 멀리까지 가버렸을 때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아주 잠시였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 컨디션이었다. 내가 최고속도로 1시간을 걸었는데 별로 지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았고 중요했다.

 

 

오늘 걷기를 끝내고 운동 기구 있는 쪽으로 와서 앉았다. 조금 쉬면서 다리 운동을 좀 더 해볼까 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생각보다 무거워서 포기하고 잠시 그냥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멀리서 내 쪽을 바라보며 가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내 뒤에 오던 아주머니 같은데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고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이어폰을 빼고 물었다.

"저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 가라는 손짓을 한다.

왜요?” 내가 아주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더니 이렇게 소리치신다.

내 허리가 끊어질 거 같아

나는 곧바로 일어나 여기 앉으시라고 했다.

내 앞으로 와서 말해줘도 일어났을 텐데 굳이 그 멀리서 그렇게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연세도 있으신 것 같고 몸이 안 좋으신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여기서 운동 할 것도 아니라서 다른 쉴 곳을 찾았다.

쫒겨났는데 기분은 괜찮았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아직 그늘진 곳은 추워서 해가 있는 곳에 자릴 잡고 앉았다.

오늘 걸으면서의 기분을 적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와서 앉는 인기척에 옆을 보니 귀엽게 생긴 꼬마였다. 분명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으로 와서 앉은 아이가 귀여웠다.

나는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했다.

나는 극 I인 사람이지만 어린 아이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몇 살이냐고 다시 말을 걸었더니 작은 손가락 4개를 펴면서 4살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때 나는 이어폰을 꼽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둘러 뺐다. 아이가 더 이야기 해주었다.

"이제 나 형님반이에요." 아무래도 어린이집 이야기인 것 같다.

"우와~ 좋겠다" 라고 리액션을 해주면서 더 좋은 대답이 없었을까 싶었다. 조카가 둘씩이나 있는데 리액션은 아직도 좀 어렵다. 그런데도 아이와 이야기하는게 즐겁고 좋았다.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이름이 뭐에요?" 만남에 통성명은 기본이니까.

하지만 내 이름은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차피 내 이름을 궁굼해 하진 않았을 테지만 어쩌면 내 이름을 말해주었더라면 좀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가 지율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나는 성이 씨인지가 궁굼해서 다시 물었다. 이제 4살인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지율이라고 다시 대답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 뒤에서 지율이를 불렀다.

지율이 언니인 것 같은데 똑부러지게 한마디를 한다.

"지율아, 모르는 사람이랑 있으면 안 돼. 일로와."

아이는 한 두 살 쯤 많아 보이는 언니에게 가버렸다.

그냥 지율이란 이름을 처음 얘기했을 때 넘어갈 것을 싶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 할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해서다.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내 상태가 지금 지율이 언니가 왜 동생을 불렀는지 알 것 같은 차림이라는 것이다.

검정색 모자를 눌러쓰고 썬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율이도 나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는 것.

어쩐지 언니 눈빛이 약간 경계하는 듯 보인 것 같더라니.

나 나쁜 사람 아닌데... 꼬마가 나한테 온 건데해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율아, 만나서 반가웠고 오늘 대화 좋았다. 대답해줘서 고마워~'라고 인사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즐거운 대화였다.

 

갑자기 조카들이 보고싶다.

 

 

 

2023.2.27.월 매우 맑음.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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