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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생각/2021

킥보드를 타는 아이

Yalli.C 2021. 6. 7. 23:03

일요일 오후다.

날이 좋아서 집 앞을 나와 걸었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잠시 후,

저기 뒤에서부터 어떤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오더니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유난히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네에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많이 봤고 방금도 다른 아이들도 분명 같이 지나 갔는데 유독 한 아이만 눈에 들어왔다.

 

낯선 경험이었는데

마치 슬로우가 걸린 듯이 그 아이의 동작이 한컷씩 내 눈에 필름 카메라처럼 찍혔다.

한참을 지나 내 시야에서 사라졌는데도 계속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의 왼쪽 발은 킥보드 위에 있었고 오른쪽 발로 땅을 구르는 동작은 평범했다.

왼쪽 다리를 구부려 상체를 최대한 낮추어 앉았다가 오른쪽 발끝에 온 힘을 주며 일어섰다.

이 모습도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지만 그 아이가 킥보드를 타는 모습은 분명 달랐다.

조금 더 과한 동작이었고 쉼없이 재빠르게 발을 굴렀다.

아주 세게 잡은 손잡이의 손에는 온 몸의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보였다.

너무 힘이 들어가서 살짝 균형만 잃어도 잘못하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입술을 앙 다물고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가려는 마음이 필사적으로 보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재밌게 타고 노는 아이같이 보이지 않고 위태해 보일 정도로 힘이 들어간 모습이

내 눈에는 전혀 즐거워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그렇게 힘을 주지 않은 다른 아이들의 속도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다시 만난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이야, 힘을 조금만 빼고 타보렴, 훨씬 재밌을거야."

 

오늘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21.06.06.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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