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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다이어리/퇴사를 했다

학업

Yalli.C 2020. 2. 12. 12:59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세상에 못 할일은 없겠다 싶다가도 이 분야를 알면 알수록 나의 부족함이 보이고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출근한 나에게 사장님이 신문을 내밀며 제안을 하셨다.

 

이거 한번 볼래요? 오늘 신문에 00사이버대학교 모집 공고가 있던데 한번 살펴보고 지원 해보는 게 어때요? 지금 별로 회사가 바쁘지 않으니까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너무 부담 갖진 말고요. 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 한번 볼게요.”

 

여러 번 느꼈지만 사장님은 이전 대표님과 다르게 학력이 중요한 분인 것 같았다. 내 자격지심에 사장님의 제안이 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쁘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에 무언가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전에 버킷리스트에 대학교졸업을 적은 것이 생각났다. 계속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핑계로 시작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언젠간 하겠지하는 기약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런 내게 이건 기회였다. 그리고 이 기회는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찾아보니 정확하게 이렇게 적혀있었다.

 

‘35살 이전에 좋은 대학교 졸업

 

지금 입학해서 4년 후면 35살이 된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망설일 수도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모집공고기간을 맞추려면 지금 바로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사이버 대학이라서 남들이 생각하는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나에겐 좋은 대학이 맞았다. 

 

그렇게 또 나는 평생의 꿈이었던 대학생. 새내기가 되었다.

서른한 살의 늦은 나이에 말이다.

 

학업계획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세웠다. 4년제이지만 학점을 부지런히 채워 3년 반 만에 졸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기준 성적 이상이면 받을 수 있는 국가장학금을 지켜야 했다. 쥐꼬리 월급으로는 생활비로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에서 절반을 부담해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첫 학기에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지원을 해주었다. 그런데 지원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내가 부담스러워서 싫었다. 정중히 다시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이건 제가 해야 할 공부이고 조금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니까 회사 지원은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시작할 수 있게 계기를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굳이 주겠다는 돈을 왜 마다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그 돈을 받아 공부를 하면 이 회사에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더는 무리임을 알기에 부담이 됐던 것 같다. 그런 부담감으로는 마음 편히 공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누군가가 더 주는 것을 못 견뎌 한다. 힘들어도 내 노력으로 장학금을 받는 것이 속이 편했다. 설사 내 노력으로 안 되어 장학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중간에 위기는 있었지만 다행히도 내내 장학금을 받아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처음에는 재밌고 좋았지만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입학 지원서를 내고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만해도 설레었었다. 

처음 학기 수강 신청을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의욕이 넘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였고, 막상 해보니 해볼만하다고 생각이 들었. 

그런데 예상보다 더 어렵고 떨렸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중간 중간 과제에 기말고사까지, 처음 한 학기는 어떨 결에 잘해냈지만 학기마다 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피를 말렸고 점점 부담감이 몰려왔다.

일을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성적의 부담감은 더해가고, 매 주마다 올라오는 많은 양의 강의를 소화하려면 미룰 수 없어 매일 책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며칠 밤을 고생하며 만들었던 과제도 한 몫 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힘들게 하는 것은 맞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아무도 내 상황을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외로웠다.

주변에서는 일하면서 공부하니까 대단하다고, 몸도 약한 애가 힘들겠다고 안쓰러워 하기는 하지만, 내가 무엇이 힘든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그게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2020/03/02 - [Y 다이어리/퇴사를 했다] -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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